1. 타인의 동의없는 생명보험 계약은 무효 판결



"서면동의 없는 타인의 생명보험계약은 무효이다"


지난 1996. 11월말 대법원이 타인의 생명 사건을 최종적으로 선고했다. 이 소식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자 보험회사에는 보험가입자들이 보험을 해약하겠다는 전화가 빗발쳤고 이로인 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우리나라 보험은 타인의 생명 보험이 많다.



대부분은 타인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타인의 생명 보험이란 남을 피보험자로하는 보험 예컨대 아내가 남편을 피보험자로하여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때 아내를 보험계약자, 남편을 피보험자라고 한다. 왜 이런 타인의 생명보험이 많은가. 보험 설계사가 주부를 상대로 연고에 의한 방문 판매를 하는 특수성 때문이다. 가장인 남편이 사고라도 나 죽거나 다치는 경우 남게된 가족은 경제적으로 쪼들릴게된다. 그래서 주부들이 보험모집인의 안내로 남편을 피보험자로 하여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보통인데 보험청약서에 주부가 남편 서명까지 다해버리는 게 보통이다



그럼 왜 이런 보험이 무효라는 것인가.


상법에 동의가 없는 타인의 보험계약은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보험금을 노리고 피보험자 몰래 보험에 가입해놓고는 피보험자를 살해하는 범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의 동의를 받게 해 그 타인 몰래 가입하는 일을 없게 하여 이런 범죄를 예방하자는 취지이다.



2. 발칵 뒤집힌 보험업계


사태가 터지자 당황한 것은 보험회사이다.
한꺼번에 해약사태가 벌어지면 당장 해약 환급금을 지급해야되므로 회사가 부도날 판이었다. 사실 이번 일은 보험회사가 자초한 일이었다. 타인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계약자가 보험사고가 나 보험금을 청구하자 상법상 무효라며 보험회사가 지급을 거절하였다. 보험회사의 도덕성을 엿 볼 수 있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보험회사는 계약이 무효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보험설계사들이 가입자로부터 받은 청약서를 받아오면 보험회사가 그것을 심사하여 승낙여부를 결정한다. 청약서상의 서명부분 필적을 대조하면 계약자가 피보험자 서명까지 했다는 사실이 금방 드러난다. 만일 서명에 하자가 있으면 설계사에게 서명을 다시 받아오게 하면 된다. 그러나 그건 교과서적인 얘기다. 보험회사는 무효인줄 알면서도 오히려 기분 좋게 승낙을 하는 것이다.



그 다음 수순은 뻔하다.


보험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보험이 유효한 것처럼 보험료를 받아 챙기고는 막상 보험사고가 나면 무효라 보험금 지급이 안 된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던 것이다. 보험회사의 시커먼 속마음이 보이는 부분이다.



생명보험회사의 사장들은 그해 12월 6일 긴급회동을 갖게 됐다.



그리고는 "가입자의 자필서명이 없어도 종전의 계약은 유효하여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보험감독원도 이어서 10일 생명보험협회 등에 "피보험자의 형식적인 서면동의가 없었다고 보험금지급을 거절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 이후 이런 보험에 대하여 보험금을 지급해 소동이 일단은 끝나는 듯했다.


3. 손해배상 판결


한편 그 뒤에 대법원에서는 가입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선고했다.


보험모집인이 청약서 작성 당시에 가입자가 타인 서명까지 대신 할 때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아 무효가 돼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손해가 났으니 보험회사는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선고된 것이다. 사실 이런 경우 보험금을 지급한다하여 보험회사에 특별히 손해는 없다. 보험은 사고 통계와 확률에 의하여 보험료와 보험금이 결정되는 사업이다. 그 동안 이미 결정된 사고 확률에 의하여 지급해야할 보험금을 무효라는 이유로 지급치 않았을 뿐이다.




4. 다시 막가는 보험회사



그런데 얼마전부터 보험업계에서는 이런 사건에 보험금을 지급치 않거나 지급해야할 보험금보다 훨씬 적게 지급하는 일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보험회사가 지급 거부를 넘어 가입자를 상대로 법원에 보험금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예전의 사장단 결의를 폐기해버린 것이다.



가입자가 소송을 제기해오면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상법 규정을 들어 무효라고 주장하면 내막을 모르는 상당수의 가입자는 항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입자가 순순히 물러나면 좋고, 패소하면 그때 물어주려는 심보다. 특히 시골의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 주 타킷이다. 이미 대법원에서도 손해배상을 하라고 선고한 만큼 굴복하면 안 된다. 시효는 불법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로부터 10년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적어도 3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해약 환급금만 받고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했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또 그 동안 이 건과 관련하여 소송을 해서 보험회사에 패했어도 구제될 수 있다.





조선일보 2002.9.11자 "보험의 허와 실" 컬럼
(강형구·변호사 02-536-8633 kg576@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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