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기준. 보험료로 연간 523,400원씩 5년만 내면, 55세부터75세까지 20년간 매년 보험금 1,000만원씩 지급하고 75세 이후 사망시에는 5,000만원 상당의 배당금을 지급합니다."




이 정도 보장이라면 대단히 매력적인 보험 상품임에 틀림없다. 5년간 250만원 정도 보험료로 납부하면 20년 뒤부터 무려 2억 5천만 정도를 보험금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 거짓말 같은 보험은 실제로 1980년 초에 팔렸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백수(白壽)보험이다.




"보험료는 저렴해도 보험금이 거액이므로 노후를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다"고 당시 보험 모집인이 이 보험을 권유하였다. 구두탄(口頭彈)이 아니라 그런 내용을 담은 보험회사 팜프렛 까지 나눠주면서. 당시 우리나라 6개 생명보험회사가 판매한 이 보험상품은 순식간에 수십만 건이 팔려나갔다. 그 해의 힛트 상품이었다.



세월은 흘러 드디어 2000년이 됐다. 계약자는 학수 고대하고,반대로 보험회사는 영원히 안 돌아 왔으면 하는 백수 보험금 지급 시기가 돌아왔다.



과연 보험회사에서 약속을 지킬 것인가? 당시 6개 회사에서 50만 건 정도 팔렸다고 가정해도 무려 125조원 정도를 보험금으로 내 주어야하니 약속대로라면 보험회사 기둥이 몇 개 뽑힐 판이다.



결론을 말하면 보험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보험회사에서 실제 지급하겠다는 보험금은 10년간 매년 100만원씩이다. 보험회사 주장은 이렇다. 지급 예정 보험금은 배당금으로 충당하려했고, 배당금은 예정이율과 정기예금 이율과의 차이에서 생긴다. 백수보험 판매이후 정기예금이율이 예정이율보다 늘 낮아서 한번도 배당금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팜프렛에 기재된 "배당금이 정기이율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는 문구가 약속을 못지키는 근거이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팜프렛 어딘가에 숨어 있을 깨알 만한 문구를 읽어본 가입자가 몇이나 될까. 설사 읽어보았다 하더라도 배당금이 어떻게 발생하는 지 이해도 어렵고 이해를 해도 팜프렛에 소개된 정도까지야 못 미치더라도 그래도 어느 정도는 보장되리라 생각했었을 것이다.



과대 과장광고로 유혹해 손님을 끌어드리고는 나몰라라하는 보험회사의 도덕성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90년대에 히트 상품 연금보험 운명도 이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연금보험 몇 개 가입한 필자도 걱정스럽다.



가입자들이 소송을 곳곳에서 제기했다.



2000년 부산 지방법원에서 팜프렛 대로 지급하라고 가입자 손을 들어주었다. 그날 보험회사 대표들 간담은 서늘하게 내려앉았으리라. 그러나 2001년 울산 법원에서 이번에는 보험회사 손을 들어주었다. 지금 전국 곳곳에서 보험회사와 가입자 사이의 백병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 당시 과천지역 소형아파트 분양 대금은 500만원 내외 였어요. 그 아파트가 지금 3억원이에요. 60배 이상 올랐어요. "



가입자의 불만이다. 보험회사는 80년대 초 백수 보험료로 받은 돈으로 부동산 등에 투자하거나 투자 수요가 왕성했던 재벌 그룹의 금고 역할을 하였었다. 특히 부동산 투자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생명보험사들이니 이 돈으로 그 동안 수십 배는 족히 불렸을 것이다. 그러나 계약자에게 보험금으로 돌려주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다.



여하튼 소송이 다 끝나기까지는 보험회사 CEO들이 발뻗고 자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일 소송에서 패한다면 회사가 흔들릴 판이니 CEO 모임이라도 있다면 서로 이런 말이 나올법하다.

" 이봐 나 떨고 있소?"






2002.10.9 조선일보 [보험의 허와 실]
(강형구·변호사 02-536-8633 kg576@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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