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서 자필서명이 없는 보험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려 보험사와 고객간 수백억원의 대규모 소송전이 야기될 전망이다.



17일 생보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고법 민사20부는 대한생명이 보험 모집인 정모씨(66)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자필서명이 없는 보험은 무효"라며 정씨에게 보험금을 돌려주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정씨의 아들은 대한생명의 보험모집인으로 있던 누나 김모씨의 동료를 통해 보험에 가입했다.지난 99년 김씨는 실적을 채우기 위해 남동생 이름으로 보장보험을 계약한 뒤 자신의 돈으로 1회분 보험료 4만1000원을 냈다. 당시 보험계약 청약과 서명은 영업소 직원이 대신했다. 그러나 김씨의 남동생은 보험계약 1주일만에 열차 사고로 사망하게 됐고 대한생명은 보험금 7500만원을 법정 상속인인 정씨에게 전달했다.



대한생명은 뒤늦게 보험계약이 본인 동의없이 이뤄진 사실을 알고 정씨를 상대로 보험금을 돌려달라고 부당이득 반환 소송을 제기, 지난달말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현행법과 보험계약의 약관상 대한생명의 주장은 옳다. 법원도 대한생명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문제는 생보사들이 서명이 없는 보험계약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던 입장을 정면으로 뒤집었다는 점이다.



지난 96년에도 자필서명 미비 계약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이후 보험설계사들은 자신이 만든 가짜 계약을 대거 해약하기 시작했다. 과거 보험설계사들은 실적에 쫓겨 친인척 이름으로 가짜 보험계약을 만드는 관행을 많이 범했는데 이들 계약은 보험금을 탈수 없는 무효계약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대규모 보험 해약 사태로 유동성위기까지 우려되자 생보사 사장들은 긴급회의를 갖고 "자필서명이 없는 계약이라도 보험금을 지급해주겠다"는 성명을 발표, 설계사들의 동요를 막았다.



그러나 대한생명은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이유로 자신이 밝혔던 입장을 정면으로 뒤집고, 보험금 반환소송을 제기해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또 한가지 쟁점은 남아있는 자필서명 계약을 어떻게 볼 것이냐다. 자필서명미비 계약이 무효라 보험금을 안 줘도 된다면 현재 보험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필서명 미비 계약은 모두 무효인 계약이 된다. 결국 자필서명 미비 계약의 보험료는 고객들이 모두 돌려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렇게 보험료를 돌려받을 경우 고객이 낸 보험료는 약관대출 이율로 부리해 돌려줘야 한다.



보험소비자 연맹 조연행 국장은 "자필서명 미비로 보험금을 줄수 없다면 보험료도 받지 말아야 한다"며 "자필 서명 미비란 사실을 알면서도 보험료는 받고 막상 보험금을 줄때가 되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험사들에게 자필서명 미비 계약에 대한 입장을 이달말까지 밝혀달라고 요구했으며 이후 보험료 반환 소송의 진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전·현직 설계사들의 작성계약을 모으면 수백억원 규모의 보험료 반환요청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명용기자 xpert@money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