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리즈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나도 평범한 보험가입자였다. 종신보험을 비롯해 몇 가지 보험을 가지고 있지만 한 달에 얼마가 빠져 나가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또 무슨 항목이 얼마나 보장되는 지도 정확히 몰랐다. 아마 대부분의 보험 가입자들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지난달 보험료가 4월부터 대폭 인상된다는 말에 놀라서 인터넷을 뒤지며 건강보험 상품이 어떤 것이 좋은가 우왕좌왕 하다가 수많은 보험사와 보험 상품에 치여 허덕이기를 일주일.... 난생 처음 보장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많이 띄었다

먼저 CI 보험의 약관이 눈에 들어왔다.
치명적인 질병을 보장해준다는 CI 보험(CI 는 critical illness 의 약자임)은 원래 그 목적이 죽기 일보 직전에 의료비가 많이 드는 점에 착안해 사망시 받는 보험금을 미리 앞당겨 받는 보험이다.

따라서 보장되는 질병은 암이나 뇌졸중, 심근 경색 같은 치명적인 질병인데 문제는 의료기술의 발전과 질병에 대한 조기 진단 등으로 이러한 병들이 잘 치료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암 같은 경우도 현재 5년 생존율이 60% 에 달하고 뇌졸중도 크게 장애를 남기지 않고 치료되는 경우가 많으며 급성심근경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CI 보험은 수년 동안 보험사들이 가장 공격적으로 판매했던 상품이며 많은 가입자들은 이전의 보험을 CI 보험으로 전환한 상태이다.

CI 보험의 약관을 한번 살펴보자.
‘중대한 뇌졸중’ 이란 거미막밑 출혈, 뇌출혈, 뇌경색증이 발생하여 뇌혈액 순환의 급격한 차단이 생겨서 그 결과 영구적인 신경학적 결손이 나타나는 질병을 말한다고 되어있다.
뇌졸중에는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과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 2가지가 있는데 거미막밑 출혈도 뇌출혈의 범주에 들어간다.

최근 고령화와 비만 인구의 증가 등으로 뇌출혈의 빈도는 줄어들고 뇌경색의 빈도가 전체 뇌졸중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영구적인 신경학적 결손이란 말은 한마디로 전신 혹은 반신불수가 된다는 의미다. 몸의 왼쪽 팔다리나 오른쪽 팔다리 혹은 양쪽 모두가 정상적이지 않은 경우를 의미한다.
그러나 뇌출혈의 경우도 두개골 안에 피가 고인 양이 적고 수술이 빨리 이뤄질 경우 이러한 신경학적 결손은 안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더구나 뇌경색은 그 크기가 큰 경우 신경학적 결손이 잘 남게 되는데 조기진단과 적극적인 치료로 완전히 회복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더구나 보험사들은 뇌출혈 중에 흔한 ‘외상에 의한 뇌출혈’은 보장에서 쏙 빼버리는 현명함을 보였다.


급성심근 경색의 경우는 더 황당했다.
급성심근경색이란 돌연사의 주범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심장으로 가는 관상동맥이 막혀서 심장의 근육이 썩게 되면 심장이 멈추게 되는 무서운 질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급성심근경색의 발생과 사망이 해마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약관에는 ‘중대한 심근경색증’이란 전형적인 흉통(가슴통증)과 함께 심전도(심장의 리듬을 체크하는 검사)의 이상과 심장근육효소(심장근육이 썩으면 상승하는 피검사)의 이상 3가지 모두가 나타나는 경우라고 되어있다.

문제는 3가지가 모두 나타나는 경우는 전체 환자의 60-70% 밖에 되지 않을 뿐더러 이 3가지가 나타난다고 해서 중대하거나 치명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3가지가 모두 나타나는 경우나 1가지만 나타나는 경우나 사망률은 비슷하다. 심장으로 가는 어느 혈관의 어느 부분이 막혔는지에 따라 흉통과 심전도의 이상은 얼마든지 안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장근육효소(심근 효소) 의 경우에는 급성심근경색을 불안정성 협심증과 구분해 주는 좋은 검사인데 보통 2가지를 많이 쓴다. 심근효소중 CK-MB 라는 것은 심근경색이 시작된 지 수시간 후에 나타나 48 시간 정도 되면 사라지며 트로포닌(Troponin)이라는 것은 좀더 늦게 나타나지만 일주일 가량 지속된다.

두 가지 효소의 진단적 정확성의 차이는 거의 없다. 그런데 약관을 보면 트로포닌 이상은 보장에서 제외한다고 되어있다. 한마디로 3일이 지나서 병원에 온 환자는 무조건 보장을 안 해 주겠다는 뜻이 숨어있는 것이다.

더구나 지방의 중소병원에서는 CK-MB 검사는 안 되고 트로포닌 검사만 가능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CI 보험은 질병이 걸렸을 때 보장하는 상품이 아니란 것을 알 수가 있다. 보험사들은 CI 보험의 원래 취지를 말하면서 가입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보험사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CI 보험의 내용이 이러하다는 것을 가입자들에게 정말 제대로 알렸는 지다. 의사 중에서도 관련분야가 아닌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운 약관을 과연 설계사들이 제대로 설명을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아니면 CI 보험은 병에 걸렸을 때 주는 상품이 아니라 죽기 일보 직전에야 받을 수 있는 상품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 했단 말인가?


[문화과학부] 신재원 의학전문기자. 가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