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수의 생명보험 계약의 유효성

이따금 수십억 원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계약자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는 트럭을 충돌한다든지, 절벽 아래로 차량이 전복돼는 사고로 사망한 경우를 보게된다.

이런 사고가 터지면 보험회사는 일단 색안경을 끼고 자살 사고가 아닌지, 아니면 보험 계약에 무슨 하자가 없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그런 의심이 들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게 된다. 어찌 보면 보험 회사의 이런 의심은 당연한 것이고 사고의 진위나 고의성 여부를 조사하는 것은 정당하다.

사실 보험회사는 고의적이거나 사기적인 보험 사고로 다른 수많은 계약자의 보험금이 헛되이 나가지 못하도록 방어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보험 재정을 튼튼히 하여 다른 보험 계약자가 보험 사고를 당했을 때 적시에 보험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고의성이 없는 보험사고까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보험 계약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2. 보험회사의 거절 사유와 법원 판단

가. 보험사의 거절 사유.

대법원 판례 (2001. 11. 27.선고 99다33311 보험금)을 중심으로 보험회사가 이런 경우 거절하는 사유와 이에 대한 법원 판단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한다.

나. 반사회적인 계약 주장

보험회사가 다수의 다액 보험 가입은 사회질서 위반 또는 신의칙 위반 주장으로 무효라고 주장을 한다.

이에 대해 법원 판단은 다음과 같다.

무효로 되는 반사회질서 행위는 법률행위의 목적인 권리의무의 내용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그 내용 자체는 반사회질서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여도 법률적으로 이를 강제하거나 법률행위에 반사회질서적인 조건 또는 금전적인 대가가 결부됨으로써 반사회질서적 성질을 띠게 되는 경우 및 표시되거나 상대방에게 알려진 법률행위의 동기가 반사회질서적인 경우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 사건 보험계약 모두는, 그 목적인 권리의무의 내용 그 자체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지 아니함이 명백하고, 법률적으로 이를 강제하거나 그 법률행위에 반사회질서적인 조건 또는 금전적 대가가 결부됨으로써 반사회질서적 성질을 띠게 된 것이 아님도 명백하다.

그리고 이 사건 보험계약은 그 계약기간이 장기간(3년 내지 20년)이며 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계약기간 내지 상당기간이 경과하면 보험수익자가 상당한 금액을 지급받기로 하는 내용의 저축적 성격을 가진 보험계약도 다수 있음을 알 수 있는바,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보험계약의 숫자가 많고 보험료와 보험금이 다액(多額)이며 이 사건 교통사고의 발생경위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사유만으로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의 동기가 자살에 의하여 보험금의 부정취득을 노린 반사회질서적인 것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 보험계약의 체결은 반사회질서적인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고, 또한 위와 같은 사유만으로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 기망(사기 계약) 주장

다수의 보험 계약은 사기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법원은 망인은 중대한 질병이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고, 망인이 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할 당시 이미 다른 보험에 가입하고 있었던 사실을 피고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이 사건 보험계약이 기망에 의한 계약이라고 볼 수도 없다.

라. 자살 주장

보험사는 망인이 자살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망인이 자살하였다고 인정하기에 족한 증거가 없다는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마. 고지 의무 위반

보험회사는 망인이 보험 게약 당시에 고지의무위반을 주장했다.

법원은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보험계약 당시에 보험자에게 고지할 의무를 지는 상법 제651조에서 정한 '중요한 사항'이란, 보험자가 보험사고의 발생과 그로 인한 책임부담의 개연율을 측정하여 보험계약의 체결 여부 또는 보험료나 특별한 면책조항의 부가와 같은 보험계약의 내용을 결정하기 위한 표준이 되는 사항으로서, 객관적으로 보험자가 그 사실을 안다면 그 계약을 체결하지 않든가 또는 적어도 동일한 조건으로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리라고 생각되는 사항을 말하고, 어떠한 사실이 이에 해당하는가는 보험의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사실인정의 문제로서 보험의 기술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판단되어야 한다.

한편, 보험자가 생명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다른 보험계약의 존재 여부를 청약서에 기재하여 질문하였다면 이는 그러한 사정을 보험계약을 체결할 것인지의 여부에 관한 판단자료로 삼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그러한 경우에는 다른 보험계약의 존재 여부가 고지의무의 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보험자가 다른 보험계약의 존재 여부에 관한 고지의무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하기 위하여는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그러한 사항에 관한 고지의무의 존재와 다른 보험계약의 존재에 관하여 이를 알고도 고의로,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이를 알지 못하여,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실이 입증되어야 할 것이다.

망인은 보험 회사와 원심 판시의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작성된 청약서에는 다른 보험계약사항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고 망인이 이를 기재하지 않은 사실은 인정되나, 나아가 망인이 위와 같은 고의 또는 중과실로 보험회사에 다른 보험계약의 체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볼 만한 증거는 찾을 수 없으므로 그와 같은 고지의무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바. 통지의무 위반 주장

보험회사는 통지의무 위반을 주장하고 있다.

법원은 이에 대하여 보험계약 체결 당시 다른 보험계약의 존재 여부에 관하여 고지의무가 인정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험계약 체결 후 동일한 위험을 담보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경우 이를 통지하도록 하고, 그와 같은 통지의무의 위반이 있으면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약관은 유효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경우에도 보험자가 통지의무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하기 위하여는 고지의무위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그러한 사항에 관한 통지의무의 존재와 다른 보험계약의 체결 사실에 관하여 이를 알고도 고의로,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이를 알지 못하여, 통지를 하지 않은 사실이 우선 입증되어야 할 것이다.

보험회사는 제1심과 원심에서 원심판결 별지 1의 ⑤, ⑥, ⑦번의 보험계약에 관하여 통지의무위반에 의한 보험계약해지 주장을 하면서 보험약관을 제출하였는데, 그 약관에는 "계약을 맺은 후 이 보험과 동일한 위험을 담보하는 다른 계약을 맺은 경우에는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는 지체 없이 서면으로 보험회사에 알리고 보험증권에 확인을 받아야 하며 이러한 계약 후의 통지의무(알릴 의무)의 위반이 있으면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취지로 규정되어 있는 사실과 망인이 위 ⑤, ⑥, ⑦번의 보험계약을 맺은 후 그와 동일한 위험을 담보하는 다른 보험계약을 여러 개를 체결하고도 이를 보험회사에게 알리지 아니한 사실을 알 수 있고, 원심이 위와 같은 통지의무위반 주장에 대하여 판단을 하지 않은 잘못은 있다.

그러나 앞서 본 법리에 따르면, 보험회사가 망인의 위와 같은 통지의무위반을 들어 이 사건 보험계약을 해지하기 위하여는 우선 망인이 그와 같은 통지의무의 존재를 알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통지하지 않은 사실이 입증되어야 할 것인데, 기록상 이를 인정할 아무런 자료도 발견할 수 없고, 따라서 피고 현대해상은 그와 같은 통지의무위반을 이유로 이 사건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그리고 생명보험계약 체결 후 다른 생명보험에 다수 가입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상법 제652조 소정의 사고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없으므로 보험회사는 상법 제652조를 들어 해지를 주장할 수도 없는 것이다.

3. 보험회사가 승소한 하급심 판례도 있다.

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여 무효(98가합70264 서울지법)

①보험계약자가 이 사건 보험계약의 체결을 전후하여 주로 교통사고로 인한 상해에 대한 보장성이 강한 보험상품에 관하여 38건의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이 사건 사고 당시를 기준으로 그 이전에 해지된 6건을 제외한 나머지 32건의 보험계약의 보험료의 총액은 매월 약 250만 원이었고, 그 중 엘지화재의 매직카종합보험, 삼성화재의 천만인운전자보험, 새시대종합보험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보험계약은 원고가 스스로 보험회사에 연락하여 가입한 것이었다.

그리고 보험 계약자는 태백시 석탄박물관에서 지방기능 10급의 직위를 가지고 근무하는 자로서 소득이 월 평균 150만 원 정도였다.

② 판단

보험 계약자가 보험회사나 보험모집인의 권유에 의하지 않고 단기간 내에 다수의 보험계약을 대부분 자발적으로 체결하여 그 보험계약 체결 경위가 통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점,

다수의 보험계약 체결로 인하여 피고가 부담하게 된 월 보험료가 피고의 월 소득을 훨씬 초과하여, 피고에게 다른 재산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보험계약 체결이 순수하게 생명, 신체에 대한 우연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별지 제3목록 기재와 같은 다수의 보험계약은 특히 교통사고로 인한 상해에 대한 보장성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고, 피고는 이 사건 사고 이전에도 유사한 교통사고를 당한 사실이 있는 점,

이 사건 사고에 있어서도 가해자가 중앙선을 침범할 당시 가해자 차량과 계약자 차량 사이의 거리, 가해자와 계약자 각 차량의 운행 속도 등에 의하면 계약자가 운전자로서의 주의의무를 태만히 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 사고의 발생을 미리 회피할 수 있었거나 피해를 현저히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여 그 사고 경위에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게약자는 보험금의 부정취득을 목적으로 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고, 보험회사가 이러한 목적을 위한 보험계약에 대하여도 보험금을 지급하게 되면 보험제도를 악용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 되고, 보험계약자로 하여금 보험사고에 의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사행심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게 되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은 민법 제103조 소정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여 무효라고 할 것이다.

나. 통지 의무 위반으로 계약해지

한편 통지 의무 위반으로 계약해지사유로 본 판례가 있다. (서울 민사지법 90가단 15905판결)

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다수의 생명보험을 체결한 것을 모두 유효로 단정할 수는 없다.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