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중복 보험

보험이란 제도는 원래 위험을 보전하자는 제도이지 보험계약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정한 경우에는 보험에 가입하고자 해도 보험회사에서 가입해주지를 않는다. 중복 보험도 그런 경우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집을 화재보험에 가입을 하는 데 한군데만 가입한 것이 아니고, 이 회사 저 회사를 돌아다니면서 1억원 짜리 집을 10억원짜리 보험 계약에 가입하였다고 하자. 이런 경우 자칫 고의에 의한 보험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더구나 보험모집인들이 자기 실적을 높이기 위해 가까운 사람을 찾아 다니며 보험가입을 권유하고 어쩔 수 없이 여러 개의 보험을 체결하는 것이 우리 실정이기도 하다. 필자도 상해보험을 여럿 가입하고 있는데 가까운 보험모집인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가입한 경우가 상당수이다. 이렇게 인정상 어쩔 수 없이 가입한 보험이 나중에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사에서 중복 보험이므로 무효라면서 지급을 거절한 다면 참으로 황당한 일일 것이다.

Ⅱ. 유효 여부

이런 계약은 유효할까.

그런데 이에 대한 판례가 최근 몇 개 선고됐다. 판례를 통해 중복보험이 유효한지 여부를 살펴보자.

첫 번째 사례는 이모씨가 여러 보험회사에 생명보험을 들었는데 무려 46건에 합계 50억 1000만원이나 되는 보험 계약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모씨는 보험 계약후 어느 날 자동차를 타고 가다 중앙선을 침범하여 마주오던 트럭과 충돌하여 사망하고 말았다. 이 모씨의 가족은 정당한 보험계약이니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지만 보험회사는 중복 보험이라 무효라면서 지급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이씨 유족은 이씨가 가입한 46건의 보험계약 전부 소송을 하지 않고 그 중 4개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소송 비용이 적지 않으므로 우선 일부를 먼저 소송을 제기해 보고 승소하면 나머지도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의사로 보여진다. 그러자 보험사측이 "자살의혹이 엿보이고 중복보험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적극적으로 응소를 하고 나섰다.


Ⅲ. 유족측 승소

법원이 과연 누구 손을 들어줄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 사건이었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국내 최대의 생명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이건 소송에서 유족 측 손을 들어 주었다. 서울지법은 98.7.16일 판결을 선고하기를 그 전해 6월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모(사망당시 39세)씨 유족이 "과다한 보험계약은 위법"이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J생명 등 4개 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보험사들은 모두 10억5,000여 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단지 본인의 수입보다 과다한 보험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신의칙이나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며 "또 계약체결시 다른 보험사와 이미 계약한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도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보험회사쪽 자살이나 중복보험 고지의무라는 주장을 배척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적어도 50억원 정도의 생명보험에 여럿 가입하였다 하더라도 보험회사 주장대로 "중복 보험으로 무효다"고 할 수 는 없게 됐다.

Ⅳ. 중복 보험 패소한 것도 있다.

위와 같은 법원 판결이 났다고 법원이 모든 중복 보험계약을 다 유효라고 선고한 것은 아니다. 93년말에 선고한 법원 판결은 이와 달리 선고하고 있는데 여기 소개하기로 한다.
이 판결은 앞서 판결과는 달리 보험회사에 알리지 않은 채 다른 보험사의 보험에 여러 번 가입한 피보험자의 경우 보험사고를 당하더라도 보험계약이 자동해지 돼 보험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고 법원이 판결한 것이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S 화재해상보험이 남 모씨를 상대로 낸 보험금 반환청구 소송에서 이같이 판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내용을 살펴보자.

피고인 남씨는 90년 4월 합계 5,200 여만원을 보험금으로 보험료는 96만원으로 하는 상해보험 계약을 S화재와 체결하였다. 남씨는 12월 작업도중 석유통을 들어올리다가 허리를 다쳤다며 의료비 및 휴업보상금을 청구하자 보험회사는 보험약관에 따라 5백 92만원을 일단 지급했다. 그러나 보험 회사는 그뒤에 남씨가 자기 회사이외에도 다른 보험회사에 여럿 보험계약을 한 사실을 알아냈다. 즉 남씨가 90년 11월 동양베네피트생명보험사와 노후설계보험을 체결했고 91년 2월 동양화재해상보험(주)와는 일반상해보험을 체결하는 등 91년 7월까지 총 4개 보험회사 및 체신부와 보험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있었다. 이를 알아내고는 92년 2월 다수 보험가입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남씨와의 보험계약을 해지한 뒤 이미 지급한 보험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여러 개의 보험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보험사고의 발생률이 증가될 수 없으며 보험료율 책정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보험계약을 해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도록 규정한 보험약관 조항은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재판부는 "다수의 상해보험을 체결할 경우 보험사고 발생 때 피보험자가 실제의 손해액 이상으로 지나치게 고액의 보험금을 지급받게 됨으로써 불법적인 보험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자신의 신체안전에 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다수 보험계약 체결사실과 보험사고의 발생위험과는 인과관계가 있다"면서 이어서 "피보험자인 남씨가 원고회사와 보험계약을 체결한 뒤에도 타보험사와 보험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원고회사에 알리지 않았으므로 보험약관상 고지의무 위반에 해당, 원고회사는 피고와의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이미 지급한 보험금은 돌려받을 수 있다"고 판시했다.

Ⅴ. 금융감독원의 결정

그렇다면 중복 상해보험에 가입한 경우는 언제나 무효란 말인가.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필자와 같은 중복 보험 가입자들 지위는 대단히 불안해 진다. 앞서 이야기한바와 같이 인정상 중복 보험에 들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최근에 보험감독원의 결정은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보험감독원에 접수된 분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청인 갑은 지난해말 교통사고 등에 대비 A보험회사의 상해보험에 가입하였는데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치료비로 2백만원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그러나 큰 사고가 나면 부족할 듯 싶어 B보험회사에도 교통사고 치료비 3백만원을 보상받을 수 있는 보험을 들어 두었다. 올들어 교통사고로 4주간 병원치료를 받게 됐고 치료비는 2백만원이었다. 퇴원후 A와 B보험회사에 각각 2백만원씩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A보험회사는 80만원, B보험회사는 1백20만원만 지급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이게 과연 정당한 것인가.

이에 대하여 보험 감독원은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손해보험에는 실제로 손해를 본 만큼만 보상한다는 원칙이 있다. 따라서 치료비 보상 보험을 아무리 많이 들었다 하더라도 치료비 이상은 보상해주지 않는다. 여러 보험회사에 가입한 치료비 보상금액이 실제 발생된 치료비를 초과할 경우 보험회사들은 각자 보험가입액에 따라 치료비만큼 비례대로 나눠서 보상해 준다. 즉 2백만원의 보험계약을 맺은 A사와 3백만원의 계약을 맺은 B사는 각각 보상금액의 비율대로 A사가 40% (80만원) , B사가 60% (1백20만원)를 부담해 실제 치료비인 2백만원만 보상하게 된다.

Ⅵ. 결론적으로

결국 치료비를 많이 받기 위하여 여러 보험에 들어둔다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그러나 장해나 사망을 위한 보험은 치료비와는 다르다. 즉 장해가 생기고 사망사고 발생했다면 이런 보험계약은 유효한 것이고 보험회사는 계약한 만큼 보험금을 전액 지불해야되는 것이다.